Review/Book & Movie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리턴투더베이직스 2019. 7. 15. 20:03

talking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talking」 中

나는 타인의 썰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궁금하니까. 그리고 재밌으니까.

 

물론 모든 썰이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항상 듣고만 싶은 것은 아니다.

화자만 재밌는 썰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끝나는 시간만을 기다리게 만든다.

(특히 나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잊기 좋은 이름은 내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줬다.

아니, 기대 이상이다.

 

특유의 담담하지만 맛깔나는 문장 하나 하나가 읽으면서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읽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도 했다. 

하지만 일하는 중에 읽었던 지라 금방 추스르기도 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직도 의문이다.

 

근래 읽었던 책들이 더럽게 재미 없었던 탓도 있겠다만.

 

책은 총 세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첫 챕터는 가족과 '김애란'이란 개인의 이야기

두 번째 챕터는 주변 작가들, 혹은 책에 대한 추천사.

마지막 챕터는 각종 기고문.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나는 책이지만 기분이 찝찝하고 무겁지만은 않았다.

 

또한, 오랫만에 다시 책을 정독해보자란 생각이 들어서 다시 읽어보았다.

인상 깊은 부분들은 손으로 쓰고, 줄 그어가며 내 기억 속에 새기고 싶어졌었다.

 

다시 읽다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책은 독자와 작가와의 대화수단이란 말(맞나)이 생각났다.

 

작가의 이문동 관련 이야기를 보면서

내가 접했던 이문동, 회기동이 떠올랐고,

(한예종과 내 모교와는 거리가 좀 있다만)

 

기고문에서 작가가 사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맞섰던 것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이 괴로움을 견뎌냈는지 떠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필체를 따라하고 싶었지만, 

단순한 말로 잘 쓰면 좋을텐데
애매한 이야기만 엮어내는 페이퍼 백 라이터
「長谷サンズ」 中

나는 페이퍼 백 라이터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스스로를 책 안에 남겨두기로 하였다.

 

이하는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몇몇 문장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261p

 

우리는 몇 해 전 우리 손으로 가짜 위인과
그를 돕는 자들을 뽑았다.

우리 역사를 만드는데 누가
어떤 비용을 치렀는지 잊고
곳곳에 잘못된 청구서를 날렸다. - 281p

 

요 며칠 나를 쥐고 흔든 건, 
재난의 풍경이 아니라
폐허에서 드문드문 피어나는 
  인간 내부의 풍경이었다.
  이상한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아파하면 자기도 아픔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들······.
그 초록이 하도 파래, 나는 울었다. - 297p